K의 남자친구는 페니스가 작기로 유명하다
영화 [the horror club]
K의 남자친구는 페니스가 작기로 유명하다. 페니스 사이즈는 각별히 보호 받아야 할 개인 사정이니만큼 누군가 먼저 꼬치꼬치 물어본 일은 없다. K양이 자발적으로 만천하에 알렸다. 간단히 술이 웬수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지나칠 정도로, K양은 술에 취할 때 마다 남자 친구의 페니스 사이즈를 화제로 올린다. 사이즈뿐인가. 상대방의 호응이 좋다 싶으면 ‘그 모양새는 얼마나 괴상한가’를 설명하기 위해 냅킨에 쪼글쪼글한 번데기를 닮은 형상을 직접 그려대기까지 한다.
덕분에, K양과 술을 마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남자친구를 직접 만나보기도 전에 그의 페니스를 먼저 알게 되었다. 만약, K양의 선배나 직장 동료 등과 처음 인사하는 자리라면 그는 호방하고 남자다운 목소리로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활짝 웃겠지만, 사람들은 속으로 ‘저 사람이 그 기형적인 페니스의 소유자란 말이지?’ 라고 생각하며 티 안 나게 키득거리거나 안쓰러워 하거나…. 어쩌면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K양은 남자친구에 대해 심각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양과 그녀의 남자친구가 나란히 길을 걸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저 여자는 돈이 무지 많군’ 또는 ‘저 남자는 뭔가 결함이 있나 보군’ 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K양은 생각했다. 키 180cm의 훤칠한 남자친구와 비교해 그녀는 작고 뚱뚱한 편에 속한다. 미국이나 호주에서라면야 그냥 귀엽게 통통한 정도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마론 인형의 나라 한국에선 명백히 ‘뚱뚱한’ 체형에 속한다.
두 사람은 2년 전,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서 만났다. 관심사가 같고 대화가 잘 통하는데다 남자친구가 ‘난 통통하고 귀여운 여자가 좋아’라며 다정하게 굴어 정작 두 사람 사이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했고 불편해했다.
자존심이 강해 평소엔 그런 내색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남자친구를 씹는 것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드러냈다. 대개 화제는 일상적인 뒷담화로 시작하여 괴상한 페니스 모양과 사이즈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다. 결론은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모나 섹스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을 기꺼이 거둬주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녀를 눈곱만치도 이해 못하겠다라는 정도는 아니지만, 같은 여자로서의 호의를 가지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K양의 처사는 치졸하고 무례하다. 게다가 섹스에 대한 단조로운 사고방식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라 실망스럽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페니스가 작다라는 것이 마치 그 사람이 평생 속죄해야 할 무언가 라도 되는 것 같다. 파트너를 성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 선천적으로 불가능한 사람을 자기가 아니면 누가 상대해 주겠냐는 식이다.
섹스를 함에 있어서 페니스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르가슴에 기여하는 페니스 사이즈나 모양의 역할은 사실 미미한 편에 속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따지고 보면 이보다 잇몸이 쾌감을 발생시키는 면에선 훨씬 월등하다.) 페니스 사이즈는 작은 편에 속하지만, 키스를 기똥차게 잘한다거나 애무하는 손놀림이 좋아서 평생 잊기 힘든 훌륭한 섹스를 구사하는 남자도 많다. 섹스의 질을 결정 하는데 페니스 사이즈 말고도 수 십 가지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신체적 결함을 한 두 가지씩 가지고 있다. (어쩌면 결함이라고 할 수도 없는 미미한 차이에 불과한데도) 우리는 종종 자신의 콤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해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곤 한다. 그 중 가장 악랄한 것은 애인의 몸을 구석구석 볼 수 있는 자신만의 특권을 이용해 타인이 확인할 수 없는 상대의 신체적 약점을 흠잡고 공개하는 것이다.